민물고기교실


제목 3월 - 열목어
작성자
관리자
글정보 2012-09-30 (일) 00:14 조회 1606
열 목 어


미려한 자태, 품위 있는 색상, 날렵함과 싱싱함, 역시 열목어(Brachymystax lenok)는 계곡의 왕자답다. 어느 물고기가 감히 열목어의 아름다움에 대적할 수 있으랴?

연한 갈색 바탕에 작은 흑갈색 반점들이 온 몸에 흩어져 있는 열목어는 몸길이가 보통 40-70cm가량이나 되는 대단히 큰 물고기로 연어나 송어와 함께 연어과에 속한다. 주로 물고기나 물위로 떨어지는 곤충, 작은 수서 동물들을 먹고 사는데 쥐를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눈에 열이 많아 그 열을 식히기 위해 찬물을 찾는다는 열목어(熱目魚), 이름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열목어가 서식할 수 있는 조건들은 무엇일까? 당연히 수온이 낮아야 하겠고, 큰 몸이 놀 수 있을 만큼 수량도 많아야 하고, 물이 좋아 먹이 생물 또한 풍부한 곳이어야 한다.

숲이 울창하게 우거지고 계곡이 깊어서 언제나 풍부한 수량을 유지시키고, 수면으로 비치는 직사광선을 차단시켜 수온 상승을 막을 수 있는 곳, 여울과 소가 적당히 반복되면서 물속에 녹아 들어가는 산소량을 증가시키고, 쉴 곳을 만들어 주고 또한 산란 장소가 형성될 수 있는 곳, 오염과는 거리가 멀어 찬물에 살 수 있는 금강모치나 버들치 그리고 수서곤충들이 모여 살아 먹잇감이 풍부한 곳. 그런 심산유곡에 열목어는 살고 있다.

열목어의 산란철은 진달래가 필 즈음이다. 고산 지대인 강원도 홍천의 내린천 계곡이나 정선 정암사 계곡의 그늘진 곳에는, 4월임에도 불구하고 잔설이나 커다란 얼음 덩어리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고, 대부분의 초목들은 겨울의 잔재를 채 떨쳐 버리기도 전이다. 겨우내 쌓인 눈과 얼음들이 봄볕을 받아 녹으면서 계곡의 물이 늘어나고, 이 늘어난 물이 열목어의 산란을 위한 이동을 자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계곡 아래쪽의 깊은 소에서 겨울을 보낸 열목어들은 물이 불어남에 따라 산란을 위해 상류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산란기는 4월말에서 5월초쯤인데 수온은 7-10℃ 정도로 차디찬 물이다. 산란장은 여울의 가장자리로 하상이 모래와 잔자갈로 이루어지고, 비교적 물의 흐름이 완만한 지역이다. 이런 곳에 약 15cm 깊이로 바닥을 파헤친 후 산란을 한다. 알 껍질은 백색 불투명하고 난황은 노란색이어서 알은 아름다운 상아색으로 보인다. 약 4mm 가량의 동그랗고 탄력 있는 연노랑 알들은 마치 진주알을 쏟아 놓은 것처럼 매혹적이다.


산란이 끝나면 알들을 모래와 자갈로 덮어놓는데, 이 자갈과 모래더미 속에서 약 한 달 동안(8.5℃에서 22일 만에 부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 진행되는 것이다. 노란 난황주머니를 달고 태어난 어린 열목어들은 일 년이면 약 6-7cm로 성장을 하고 2년이면 15-20cm, 3년이면 25-30cm 까지 커서 당당한 어른 열목어가 되는 것이다.

무용담이란 것이 항상 허풍이 섞이기 마련이지만, 어떤 이는 열목어를 잡아 칡덩굴에 꿰어 어깨에 짊어지니 그 꼬리가 땅에 끌리고, 또 어떤 이는 열목어 한 마리를 지게에 짊어지고 겨우 산길을 내려 왔더란다. 왕년에 펄펄 날았다던 할아버지들의 옛 이야기를 동무 삼아 홍천군 내면의 어느 민가에 들리면, 몇 십 년 전 열목어를 잡을 때 사용했다는 긴 창이 남아 있다. 자루 끝에 달려 있는 오지창이 어른 손바닥만큼이나 큰 것으로 봐서 그 당시 잡았다던 열목어의 크기를 짐작하고도 남을 만했다.


나는 산란을 위해 상류로 이동하는 열목어들이 떼 지어 칡소폭포(홍천군 내면의 내린천 상류에 있는 폭포)를 뛰어 넘는다는 장관을 꼭 한번만이라도 목격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몇 년째 헛걸음만 하고 말았다. 그만큼 서식 환경이 열악해지고, 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원인에는 지구 온난화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이 된다.


우리나라의 열목어 서식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천연기념물 73호가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정암사 계곡이고 74호는 경북 봉화군 석포면 대현리 일대이다. 열목어 종 자체가 천연기념물이 아니라 서식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이유는 종 자체의 희귀성도 희귀성 이지만 이 지역들이 세계적인 열목어 분포 지역의 남방한계선이라는 생물학적 의미 또한 강한 것이다.


열목어는 북방계의 냉수성 어류로서, 만주나 시베리아가 분포의 중심지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한강과 낙동강 상류의 열목어 서식지는 세계적으로 열목어가 분포하는 가장 남쪽 지역이 되는 셈이다. 더 아래 지방으로 내려가면 더워서 살수가 없는 까닭이다. 가령 한강 상류의 열목어가 사라져 버린다면 열목어의 남방한계선은 상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낙동강 상류인 봉화군 석포면의 열목어는 이미 멸절되어 강원도의 열목어를 이식하여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이제 열목어의 순수한 자연 개체군들이 살고 있는 지역은 강원도 땅밖에는 없다. 홍천군 내면의 내린천 상류, 인제군 북면의 백담사 계곡과 기린면의 진동 계곡 그리고 양구군 방산면의 문등리 계곡 정도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 1530) 등의 고서에 의하면 강원도만 해도 춘천을 비롯하여 원주, 정선, 인제, 영월, 강릉(현 평창), 홍천, 횡성, 양구 일대에 열목어가 서식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사라져 버리고 몇 군데 남아 있지가 않다.

열목어를 잡는 일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대부분의 열목어 서식지는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열목어를 잡아 보고 싶은 사람들은 언제나 열목어보다도 많다. 열목어 낚시의 손맛을 봐야겠다는 사람, 열목어를 꼭 한번 먹어 봐야겠다는 사람, 열목어를 잡아다 키워 봐야겠다는 사람 등 등 등. 더 이상 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닐 듯 싶다.

우리 모두 한 십년쯤만 참아 보면 어떨까? 그 동안 청소도 하고, 나무도 심고, 훼손된 곳을 복원도 하면서 먼발치에서 얌전히 기다려 보는 것이다. 십년쯤 후면, 우리는 열목어가 낚시에 걸렸을 때의 짜릿한 손맛도, 임금님께 진상했다던 일품의 열목어 요리도, 큰 어항에서 헤엄치며 노는 열목어의 준수한 모습도 마음껏 즐기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홍천의 내린천 계곡 어디쯤에는, 열목어 플라이 낚시터가 생겨날지도 모를 일이다.